<일 본> 천황을 제외하곤 모두 화장한다. |
일본의 장묘문화는 동북아의 '돌연변이'에 속한다. 100%에 육박하는 화장률, 검소한 장례식. 오래전부터 국가 주도로 정비돼온 깔끔한 공원묘지 등이 같은 유교 영향권에 들어 있는 우리나라나 대만의 현실과는 크게 다르다. 사회주의 권력으로 화장을 강제해온 중국조차도 일본만큼 사회전체나 개인을 위해 효율적인 장묘제를 정착시키지 못한 실정이다. 일본 후생성에 따르면 93년 일본의 화장률은 97.9%로 집계됐다. 사망자 94만3천여명 가운데 매장은 2만여명에 불과했다. 특히 도꾜나 ,교도 등 대도시의 화장률은 그야말로 100%다. 봉분은 일본안에서도 도서지역에나 가야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의 화장률은 단연 세계최고다. 영국화장협회가 92년을 기준으로 세계각국의 화장률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일본은 97.6%로 체코의 87.6%와 현격한 차이를 보이며 1위를 차지했다. 3위는 영국(69.2%), 4위 덴마크(68.2%), 5위 스웨덴(63.8%), 6위가 스위스(61.2%) 등으로 서양국가들이 순위를 잇고 있지만 1천년이상 유교 영향을 받아온 일본의 화장률을 크게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이노 고타로' 후생성 기획법령계장은 "화장률이 높아진 것은 인구의 도시 집중화로 부동산 가격의 엄청난 상승에 따른 묘지난, 국민의 경제의식과 위생관념 등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매장금지법령을 제정한 적이 없으며 자치단체가 위생 및 사회복지 이유로 토장 금지구역을 정할 수 있게 돼 있지만 실제로 지정한 경우는 많지 않다. 또 '사이토 마사루' 도쿄도 생활환경부 지도계장은 "특이하게 높은 일본의 화장률을 종교적인 배경에서 해석하는 시각도 있지만 그러나 불교가 화장을 보편화 시킨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일본의 고서인 '속일본기'에는 몬무왕(문무왕) 4년(700년)에 승려 도쇼(도소)가 화장된 것이 효시고,이후 지토(지통)왕에 이어 4명의 왕이 잇따라 화장됐다고 기록 돼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부유층의 호사스런 장례였을 뿐 일반인에게 완전히 확산된 것은 아니라고 그는 지적했다.
에도막부시대에 접어 들면서 토장이 부활됐고 메이지유신때인 1873년에는 왕의 신격화를 위해 화장을 금지 했다가 전염병 때문에 2년만에 해금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의 영향보다는 일본인 특유의 경제관념이 매장이 어려운 현실에서 무리하게 매장을 고집하기 보다는 간편한 화장쪽으로 자연스럽게 선회, 세계최고의 화장국이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일본의 화장률은 1925년까지만해도 43%수준이었고 태평양전쟁 직후인 45년에는 30.1%까지 떨어 졌다. 그러나 고도 경제성장기였던 65년에 화장률이 71.8%로 치솟았고 75년 85.7%, 85년에 94.5%를 기록했다. 1925년까지 43%에 그쳐 그러나 화투장을 때리는 왁자지껄함은 찾아볼 수 없고 조촐하고 검소하게 치러진다. 검은색 양복이나흑색 개량 기모노를 입은 남녀 유족들이 단출하지만 엄숙하게 화장장에서 고별식을 치른 뒤 유골을 챙겨 납골당이나 납골묘로 떠나는 게 이들 장례식이다.
일본인들의 무덤은 더욱 실속 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묘 크기에 특별한 제한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크기가 2평을 넘지 않는다. 건설성 자문위원회에서는 4평방미터(1.2평)를 적 정한 묘지 크기로 권장하고 있지만, 유족들은 이보다 작게 묘지를 쓰고 있다. 도쿄도 '하찌오지'시에서는 사설 묘지업자들의 무분별한 상혼을 막기 위해 묘지를 너무 작게 하지 말 라는 규정을 두고 있을 정도로 작은 묘를 찾는 일본인들의 경제관념은 확고하다.
일본의 묘는 대부분 가족묘다. 보통 2-3명, 많게는 6명까지의 유골항아리를 알뜰하게 묻는다. 묘는크지 않지만 묘석은 비싼 것을 쓴다. 묘 옆에는 잊지 않고 정원수를 심어 놓는다. 묻힌 사람이 많다 보니 성묘객도 많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오래된 묘는 정원수가 마치 분재처럼 잘 가꾸어져 있다. 이런 일본이지만 묘지걱정이 살아 있는 사람을 짓누르는 것은 마찬가지다. 일본의 가족묘는 장남이 승계한다. 장남이 아닌 자식들은 가족묘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핵가족이 늘면서 묘지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또 납골당 이용이 완전히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점도 묘지난을 가증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장남이 가족묘 승계 이들 가운데 12%는 자신이 들어갈 묘가 아니라 매장하지 못한 유골을 임시로 보관 중이어서 당장묘지가 필요하다는 경우였다. 이에 따라서 일본 정부는 늘어가는 미혼 사망자를 위해 일정기간만 묘 지를 관리해 주기로 계약을 맺는 시한부 묘, 시한부 납골당을 검토중이다. 또 납골당을 보다 현대화하는데 예산을 집중하고 있다. 이 밖에 현재 법적으로 금지돼 있는 산장(바다나 산 등에 유골을 뿌리는 장례법)을 허용하기 위해 '묘지 및 매장에 관한 법룰'을 개정하는 방안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등 만성적인 묘지난 해결에 고심하고 있다. 묘지마다 작은 정원 잘 포장된 3차선 아스팔트 길 옆으로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적송과 단풍나무, 시다레사쿠라(벚나무)등이 눈에 들어 온다. 일본의 국조(國鳥)인 카라스(까마귀)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여유있게 조깅이나 산책을 하는 주민도눈에 띈다. 다마영원의 '오쿠마 테츠오' 관리계장(42)은 "이곳에 심어진 나무는 100여종 2만본에 이른 다."며 "설립 당시부터 2000년까지 매년 적송 200그루씩을 심도록 계획이 잡혀 있다."고 말했다.
일본인들의 치밀한 계획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묘역뿐 아니라 진입로 양편에도 벚나무가 심어 져 있어 11만-13만명의 참배인파가 몰린다는 춘분에는 꽃터널을 이룬다. 다마영원의 총면적은 128만 평방미터, 이 중 묘지면적은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60만평방미터다. 녹지를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묘 지면적을 줄였기 때문이다. 묘지수는 65257기. 묘당평균면적이 10평방미터에도 못미친다. 이곳에 34만5천6백83명의 유해가 안장 돼 있는 점을 감안하면 망자 1명이 차지하는 묘지공간이 평균 5평방미터도 되지 않는다는 계산이다. 매년 200그루씩 심어 다마영원 정문 오른쪽에는 실내 체육관을 연상시키는 화강암 건물이 우뚝 솟아 있다. 미타마납골당이다. 도쿄도가 오랜 연구 용역 끝에 설계와 내부설비를 결정해 47억엔의 공사비를 쏟아 부은 역작이다. 이름도 일반인의 공모를 거쳐 정했다. 93년 완성한 이 건물은 높이 20m, 최대 직경이 61m로 건평은 3518평방미터에 이른다. 6개층으로 나눠져 5200개의 금고식 납골함이 배치돼 있다. 한 개의납골함에 2-6명분 유골항아리를 보관할 수 있어 최대 21840명의 유골을 안치할 수 있다. 납골함은30년 시한부로 분양되며 계약을 갱신할 수 있다.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현재 2411개의 납골함이 분양된 상태다. 납골당 내부는 저승세계를 형상화 했다는 파스텔톤의 벽들이 둘러 싸고 있고, 중앙 홀에는 쉬지 않고 흘러내리는 6m 높이의 원추형 기념조형물이 서 있어 동화의 나라에 온 듯한 착각을 준다. 아오야마 최고 명당 꼽혀 사용료 22만5천-37만5천엔과 연간 2400-4000엔의 관리비만 내면 납골당을 사용할 수 있지만 아직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납골당보다는 가족묘다.
신쥬쿠에서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아오야마영원'은 1874년에 조성된 일본 최초의 공영묘지. 이때부터 일본에서는 산기슭에 옹기종기 조성된 마을단위 묘지에서 벗어나 보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묘지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도쿄시민들은 유서가 깊고 유명인들이 묻혀 있다는 점뿐만 아니라 참배길이 멀지 않다는 현실적인이유 때문에 이곳을 최고의 명당으로 꼽는다. 빌딩숲에 둘러 쌓인 '아오야마영원'은 삭막한 도심에신선한 휴식공간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120년을 넘은 오랜 묘지지만 깨끗하게 관리돼 온데다 오랜 풍상을 겪어온 나무들이 분재마냥 아름답기 때문이다.
묘역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2차선 도로주변에는 벚나무가 울창하게 심어져 있어 교통체증을 피하는샛길 역할을 하고 있다. 점심시간 때면 택시 운전자들이 이곳의 이면도로 곳곳에 차를 세우고 밥을먹거나 피로한 눈을 잠깐 붙이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러나 26만4천평방미터인 묘역에 14644명이 묻혀 있는 이 영원은 현재 묘지기능을 상실했다. 계획된 묘지수요로 공간이 동나 60년 이후 묘지를 분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오야마' 뿐아니라 도쿄도내 8개 공영영원 가운데 4곳이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도쿄도 건설국 '이시이 코이치' 영원녹지과장은 "무연고 분묘를 정리해 납골당으로 전환하고 토지활용도가 높은 새로운 형태의 묘지를 확산시키지 않는 한 도쿄교외의 나머지 4개 묘지도 멀지 않아 포화상태에 도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참배 후엔 가족 휴일 나들이 동부에서는 유골을 전부 수습하지만, 서부는 유골중 일부만 선별 수습한다. 묘석도 관서지방은 관동보다 다소 규모가 작다. 그러나 관동이건 관서건 100%에 가까운 화장률에는 차이가 없다. 교토시를 포함한 교토부의 지난해 사망자 수는 21044명, 이 가운데 20898명이 화장해 화장률이99.3%에 이른다. 오사카부의 경우도 지난해 사망자 67276명 가운데 매장은 10명에 불과했다. 화장률뿐만 아니다. 묘지 하나를 만들어도 허술하게 만들지 않는 일본인들의 알뜰함은 우지시영(市營) '아마가세'묘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묘지마다 알뜰한 정성 안락한 죽음의 세계를 상징한다는 아담한 못을 갖춘 정원, 삶의 활기를 주는 분수대, 널찍한 초지 (草地)가 펼쳐진 시바후광장 등을 곳곳에 조성해 마치 위락공원과 같은 느낌을 준다.
40년 공직생활을 마치고 이곳 관리원으로 근무한지 5년째라는 '사와다 쇼지'씨는 "이곳의 사업면적11만3천평방미터 가운데 묘지면적은 6만2천평방미터에 불과하고 나머지 5만1천평방미터는 보존녹지로 남겨 두었다."며 "묘지에 포함된 녹지까지 합치면 묘역의 2/3이상이 푸른 공간"이라고 말했다. 큰 곳도 1.5평 미만 교토부 생활위생과 '이마무라 토루' 주임은 "묘지를 조성할 때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죽은 사람보다 참배하러 올 사람"이라고 말했다. 묘지를 아름답고 깔끔하게 만들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찾는 사람도 없는 지역사회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아마가세' 묘지에서는 한 사람이 묘지를 여러 개 분양 받아 연결 사용하는 것을 용인하고 있다. 그러나 호화분묘를 조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게 관리사무소측의 설명이다. 묘석의 크기를 제한해 놓은데다 4평방미터 묘소를 조성하는데 석재값 까지 4백만-5백만엔이 들기 때문이다. 이곳의 묘지는 2, 3, 4평방미터의 세 종류로 가장 큰 곳도 1.5평을 넘지 않는다. 묘지값이 2평방미터가 50만엔, 3평방은 75만엔, 4평방은 100만엔이고, 묘지 관리료로 연간 4천-5천엔을 내야 한다.
이마무라 주임은 "이곳에는 우지시(市)에 거주하는 사람들만 매장이 허가되며 묘지 사용 허가를 받은지 5년안에 묘석을 세우지 않으면 허가를 취소하는 방식으로 묘지 가수요를 없앴다."고 밝혔다. 재일교포들 어떻게 하나 교회는 이곳에 1만명을 수용하는 초대형 교포전용 납골당을 건설할 계획이다. 노정일 오사카교회 목사(53)에 따르면 이 같은 계획은 교포들의 장묘의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이를 수용할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마련됐다. 노목사는 "불과 10년전만해도 화장을 받아 들이지 못해 고국행을 택하거나 최소한 땅에 묻히기를 고집하는 교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고국이나 일본 모두 묘지값이 오른데다 참배의 번거로움 등을 고려해 납골당을 선택하는 교포들이 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은 재일교포 가운데 1세대의 비율이 10%가량으로 줄어 들면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현재 교포들이 첫 번째로 꼽는 묘지는 '센난 메모리알 파크'. 이곳에서는 고국행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간사이 공항이 바라다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의 묘지 값은 석재비를 제외하더라도 1백만엔이나 된다. 또 오사카 사카이시(市)에 교포단체가 운영하는 전용납골당이 있지만 3백명의 유골밖에 모실 수 없는 소규모에 불과하고 참배를 위해서는 교통체증 시간대를 피해 가더라도 버스로 한시간 이상 소요되는 불편을 겪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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