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대통령

박정희 그에게 손가락질 하는 너(1)

동 아 2011. 12. 4. 11:15

박정희 그에게 손가락질 하는 너(1)

일본으로 유학 했던 당시의 수많은 지성도 모두 친일파?

박정희 그에게 손가락질 하는 너(1) <특집 연속기고>

박정희 친일? 장준하는 더한 친일파.

노무현 정권 때 국회의원이었던 김희선은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 회장”을 맡아 친일파 708인 명단 발표를 주도하며 일약 스타 의원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독립운동가라고 주장했던 할아버지 김학규에 대한 논란이 일며 수 많은 의혹을 남겼다. 안동김씨에서 의성 김씨로 넘나드는 호적탐험, 아버지 김일련의 친일행각, 여권 국회의원들은 중국과 만주 일대를 찾아 조사하며 진실공방을 벌렸다.

수 많은 의혹을 남기며 일종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역사를 재단하는 어리석음은 보는이로 하여금 혀를 차게 만들었다. 당시 열우당 유력한 몇몇 국회의원 선친이 일제도 헌병, 훈도, 동양척식주식회사 등에 근무한 것이 밝혀지기도 하였지만 그 누구도 친일파로 규명되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을 미화 한다고 "영웅시대"라는 드라마도 수상한 조기종영하던 졸렬한 시대 아니던가.

당시 좌파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민족문제연구소도 자신들 성향에 맞는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했다.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왔던 박정희 대통령의 친일인명사전 등재로 첨예한 공방이 이어졌지만, 민족문제 연구소는 기어이 박정희 대통령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했다. 수많은 비판에 직면하자 민족문제 연구소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일혈서를 공개했지만 그것도 원본이나 출처를 밝히지 않는 등 석연치 않은 뒷맛을 남겨 박정희 대통령의 친일인명사전 등재는 의도된 기획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민족문제 연구소는 증거로 내어 놓은 박정희 대통령의 혈서 출처를 만주신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만주신문은 1927년 11월 1일 창간하여 1935년 8월 7일에 폐간한 기록이 일본국립국회도서관에 남아 있다. 기록에 관한한 꼼꼼하기로 소문난 일본이고 더욱이 국립 국회도서관이니 기록의 신빙성은 틀림이 없다. 박정희 대통령은 1940년까지 문경 소학교에 근무하다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했다. 따라서 민족문제 연구소가 공개한 만주군관학교 입학을 위한 만주신문 충성혈서는 진실이 아닌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가 동양을 통일하는데, 젊은 목숨을 바치게 해달라고 한시를 지어 바친다. 조선 총독부의 기관지에 젊은이는 일제의 종이 되어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라며 끓어 넘치는 열정과 달변으로 수차례 기고를 한다. 6.25 사변 때 UN군이 노획한 공산당 문서에도 그는 “틀림없는 친일파”로 기록되어 있다. 저와 같은 뼈 속 깊숙한 친일을 저지른 사람이 바로 몽양 여운형이다. 그러나 좌파인사가 주축이 되어 결성 된 민족문제 연구소는 여운형을 친일인명사전등재를 거부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만주군의 일원으로 만주에 주둔할 때 110여회나 출격하여 독립군 토벌에 나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1944년에 만주군 8사단에 배치되어 사단장의 부관으로 근무하여 일선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 만주에는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대첩 이후 일제는 철저한 보복을 통한 “간도참변”을 일으키고, 19030년대는 “만주사변”이 일어나 독립군은 중국 내륙으로 옮겨가 만주에서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과 일제에 맞서 싸운 풍운아 김두한 전 국회의원.

또한 흩어진 독립군은 1930년대에 중국 내륙 깊숙한 충칭에 있는 광복군에 흡수되어 사라지게 된다. 110여회 전투참가도 1년간 3일에 한번 꼴로 생사를 걸고 전투에 참가 했다는 것인데, 전투가 하루, 이틀에 끝나는 것도 아니고 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로봇이 아닌 이상 인간의 체력으로 3일에 한번 꼴로 총알이 빗발치는 일선 전투에 참가하는 것도 물리적으로 가능치 않다.

그간 좌파 쪽에서는 친일파 박정희, 독립운동가 장준하와 비교하며 박정희 대통령 죽이기에 나서왔다. 그러나 장준하도 박정희 대통령을 재단한 잣대로 접근한다면 박정희 대통령 기록을 압도하고 넘치게 화려하다. 장준하의 부친은 일제 때  판임관교원을 지냈으며, 장준하도 신안소학교 판임관 교원을 3년간 하다 일본으로 유학 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저들은 박정희 대통령을 훈도라 비아냥 거려 왔다. 따라서 장준하도 훈도인 것이다.

장준하는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하여 전선에 투입 되었다. 저들은 장준하가 탈출하여 광복군이 되고자 계획된 자원입대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태평양 전선과 동남아 전선, 만주전선, 중국전선 등 광범위한 전선을 운영하고 있어 어디로 배치될지는 귀신도 모를 일이었다. 이러한 전차로 박정희 대통령의 전력이 친일파면 장준하는 더한 친일파로 등재 되어야 하며, 여운형은 수괴 정도로 등재 되어야 옳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절 공부하기 위해 대학교를 간 것이 친일의 기준이 된다면, 일본으로 유학 했던 당시의 수많은 지성도 모두 친일파가 되어야 한다. 동경사범대를 졸업한 함석헌, 일본육사를 졸업한 지청천, 신학대를 졸업한 장준하, 문익환도 친일파가 되어야 한다. 자력으로 독립이 요원했던 때 배운 것이 친일의 기준은 될 수 없다.

그러나 저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다까기 마사오는 거품 물며 따지지만, 장준하의 치요모토 슌가와는 철저하게 함구한다. 참으로 해괴한 사람들이다. 역사가 일개 단체나 어느 개인으로 정하는 고무줄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프런티어타임스(www.frontier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