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대통령

군사혁명, 共産主義 이기려고 했다

동 아 2012. 8. 20. 08:26

군사혁명, 共産主義 이기려고 했다

최 응 표 (뉴데일리 고문)

1964년 12월 9일, 경제 지원을 얻기 위해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수도 본에서 서독수상 에르하르트와 마주 앉았다.

“왜 군사형명을 했오?” 라는 에르하르트 서독 수상의 물음에 박정희 대통령은 이렇게 대답한다. 
"공산주의 이기려고 했오.” 짧지만 단호한 어조였다.


그랬다. 박정희의 군사혁명은 赤化의 길(죽음의 길)로 빠져드는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한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스탈린의 음모로 공산화의 길로 끌려가는 한반도를 반쪽이나마 자유민주국가의 길로 바로 잡은 이승만처럼, 공산주의 이기려고 혁명을 했다.
“금후 50년을 전망하려거든 과거 50년을 뒤돌아보는 것이 좋다.”고 일러 준 폴 케네디의 말처럼, 한국의 미래를 점쳐보기 위해서는 우리의 과거를 민족의 양심으로 뒤돌아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역사적 인물이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는 어디까지나 현재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5.16이 ‘쿠데타’냐, ‘혁명’이냐는 용어 해석을 놓고 정치싸움을 벌이는 것은 성공한 대한민국 역사의 현실 속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과거는 미래를 위해 해석되고 존재해야 한다”는 베트남 전 국가주석 응웬 밍 찌렛의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공산주의 이기려고 혁명 했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정신 속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북으로 가자”, “남으로 오라”, 데모 속에 날이 새고 데모 속에 날이 저물던 민주당 張勉정권의 무능과 부패가 낳은 사회적 혼란은 6.25 이후 최악의 국가존망의 위기를 가져 왔다. 공산화 일보 직전까지 이른 위기상황, 아무도 부인 못할 것이다.

4.19 의거는 부패한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당에 정권을 넘겨주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헌정질서회복과 자유민주주의 실천, 그리고 정의 구현에는 실패했다. 다시 말해 부정과 불의에 항거한 4.19정신은 민주당 정권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감시에 제구실을 다하지 못한 결과, 극도의 사회혼란을 가져오며 공산화의 길로 빠져드는 국가 최대의 위기를 초래했다.

민주당(민통당)은 기를 쓰고 5.16을 부정하려 들지만, 그럴수록 민주당은 自家撞着(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민주당은 50년, 60년 정통성을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그 정통성은 張勉 정권을 낳은 50여 년 전의 민주당에서 이어지며, 그 민주당의 무능과 무소신과 부패가 5.16을 불러 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한다면 오늘의 민주당은 결코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다시 말해 從北 주사파의 2중대로 전락한 민주당은 5.16을 입에 올릴 자격이 없다는 말이다.

 

민주당의 장면 정권 등장과 함께 대한민국의 역사진행도 멈추게 됐던 국가적 불행을 어떻게 잊을 수 있는가. 완전히 무정부상태에 빠진 사회혼란상은 해방공간의 암흑천지 그대로였다.

“현재의 문제를 이해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를 공부하는 것” 이라고 한 윌 듀란트의 말처럼, 5.16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쿠데타가 됐든 혁명이 됐든 어떤 수단에 의해서든 국가체제의 변혁 없이는 나라가 존속할 수 없었던 절망적 과거를 살펴보아야 5.16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5.16 쿠데타는 목적이 아니라 방법이었다. 5.16 쿠데타와 유신 개발 독재가 없었다면 박정희의 국가개조와 경제개발은 없었을 것이다. 한국은 불가피한 시기에 불가피한 지도자가 불가피한 독재를 함으로서 ‘행운의 국가궤도’로 진입할 수 있었다”는 중앙일보 김 진 논설위원의 5.16 평가가 가슴에 와 닿는다.

 

민주당과 從北主思派, 그리고 5.16 부정세력에게 묻는다.

헌법질서는 무너지고, 공권력은 제 기능을 상실한 채 공산세력에 밀리고, 김일성은 제2의 남침을 꿈꾸고, 북으로 가자는 데모로 사회는 난장판이 되고, 너도 나도 주인이 되겠다는 아귀다툼으로 경제는 무너지고, 학원가는 4.19 때처럼 건설적인 데모가 아닌 공산화의 소요로 엉망 상태가 된, 총체적으로 파괴된 국가질서를 무능하고 부패한 민주당의 장면 정권이 수습할 수 있었다고 보는가. 구파, 신파 계파 싸움으로 걸레가 된 민주당이 말이다. 그 정통성을 이어받았다는 민주당, 대답 좀 해 보라.

5.16당시의 국민소득은 겨우 60불에서 70불,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다. 새무얼 헌팅턴은 아프리카 가나에 비교했고, 김일성의 북한보다도 한참 뒤쳐져 있었다.

 

그런데 겨우 5.16 혁명 51년이 지난 오늘, 대한민국 현 주소는 어떤가.

무역 1조 달러, 국민소득 2만 불, 세계10대 경제대국, 보릿고개는 까맣게 잊고 영양 과다로 살빼기에 돈을 쓰는 나라, 근로자의 평균임금이 미국보다 높은 나라, 시골 어느 구석에 가도 포장 안 된 도로 없고, 자가용 없는 집 없고, 무기 농 식품을 골라 먹는 나라(물론 국민 전체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세계정상들을 불러들여 국제회의를 주도하며 의장국이 되는 나라, 삶의 질이 세계20권 이내에 드는 나라, 이런 비약적 발전의 원천이 어디 있다고 보는가.

5.16 군사혁명을 ‘구국의 혁명’ 또는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으로 보는 이유는 4.19 후, 共産化의 위기에서 국가를 구하고, 북한에게도 뒤떨어져 있던 대한민국을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도약하는 발전 동력을 가져왔다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다. 국민의 70% 가까이가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잘 살아 보세’의 함성 속에 삶의 질은 높아졌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속에 국가산업은 발전했고,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 이라는 철저한 이념 속에 공산 북한을 뛰어 넘을 수 있었다.

5.16 군사혁명은 民心과 軍心이 하나가 돼 성공한 역사적 대 사건이다. 우리는 모두 5.16군사혁명의 수혜자들이다. 민주당, 從北派, 5.16 부정세력 모두를 포함해서 말이다.

 

5.16과 박정희 대통령을 정치쟁점화 하면 할수록 코너에 몰리는 쪽은 민주당과 종북세력이 될 것.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10대 경제대국을 이루면서 동시에 민주화를 이룬 성공한 대한민국, 누가 감히 貶毁(폄훼)할 수 있는가.

민주당의 장면 정권이 계속되었어도 오늘의 영광을 가져올 수 있었다고 보는가. 그래도 어느 한 구석에 양심이란 게 남아 있다면 여기서 민주당과 從北主義者는 분명 고민에 빠질 것이다.

5.16 군사혁명을 계기로 발전하는 대한민국을 중국의 등소평은 중국경제발전의 모델로 삼았다. 왜 그랬을까. 음미해볼 일 아닌가.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는 모두 5.16 군사혁명의 수혜자들이다. “군사혁명, 공산주의 이기려고 했다”는 그 구국정신이 영광과 축복의 비가 되어 우리를 적시고 있다는 사실, 대한민국 역사와 함께 영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