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대통령

청와대 집무실의 철모와 군화

동 아 2010. 4. 5. 12:43
청와대 집무실의 철모와 군화

대통령 박정희. 1976년 8월18일 오전 10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안에서 전방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던 미군 대위·중위 2명이 북한 인민군이 휘두른 도끼와 방망이로 무참히 살해된 사건이 터졌다. 대한민국은 이내 아수라장이 돼버리면서 박정희의 입만을 주시했다. 박정희 입에서 응징의 결기가 튀어나온다.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다”, 이 한마디가 국민의 공분에 불을 댕겼다. 위기는 통치권자에겐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중앙정보부 판단기획국장 김영광(전 국회의원)이 박정희에게 건의한다. “이 사건에 대한 언론의 호칭부터 혼선입니다. ‘8·18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으로 통일하면 어떨까요?” 국민의 공분은 더 폭발했다. 박정희는 미국에 이렇게 말했다.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은 미군이 아니라 우리 한국군이 끝내겠다.” 미국도 깜짝 놀랐다. 박정희의 응징 의지가 저렇게 강할 줄이야! 한국군이 JSA에 들어가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시작했다.

바로 그때 대통령 집무실에서 박정희를 목격한 당시 민정수석 박승규의 살아 있는 증언. “박 대통령 집무실에 철모와 군화가 놓여 있었다.” 북한에 대한 응징을 대한민국 국군통수권자인 바로 자신이 진두지휘하겠다는 결의였다. 북한군이 가지치기를 막거나 도발해오면 ‘황해도 사리원’까지 치고 올라가는 계획을 한미 간에 완벽히 세워놓고 실천에 들어갔다. 미국은 F-4, F-111 전폭기 2개 대대 증파, B-52 폭격기 출격, 항공모함 미드웨이호 한반도 해역으로 항진.

그런데? 김일성이 ‘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이름으로 유엔군 사령관에게 사과문을 보낸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사건이 발생한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김일성의 완전한 굴복으로 이틀 만에 끝이 났다. 제2의 한국전쟁 발발 위기는 그렇게 막이 내렸다. 이게 대통령인 것이다. 한미동맹에 한반도 안보의 사활이 달렸지만 제 나라 안보는 제 나라 국민이 지켜야 하고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철모 쓰고 군화 신고 전장에 나가 죽을 각오를 해야 하는 것.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을 왜 좌파·친북 정권이라고 하느냐? 대통령 노무현은 북핵 개발에 뭐라고 했나? “핵무기가 자위수단이라는 북한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뭐 일리가 있어? 북한의 미사일 난사(亂射)에는 “북한의 미사일은 미국 가기에는 너무 초라하고 한국을 향하기에는 너무 크다. 군사적 위협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이다”? 정치적 목적? 정치하려고 미사일 쏘는가? 김대중의 말을 반추해보자. “북핵과 미사일은 미국 앞에선 어린애 장남감밖에 안된다”? 북한이 수조원 퍼부어 장난감 공장 만드나. 고정간첩이나 할 소리를 대통령이 하는 대한민국에서 10년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 그래서 대통령 이명박을 뽑은 것 아닌가?

그러나 기가 막힌다. 대통령 이명박은 지난달 30일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군사적으로 대응하는 데에는 반대한다”며 “개성공단 폐쇄와 같은 극단적인 조치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 군사적 대응 카드로 압박하지 않고 개성공단 폐쇄 불사하지 않으면 어떤 수단과 방식으로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를 저지한다는 말인가? 동원 가능한 모든 카드를 구사하며 북한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할 것인데도, 이렇게 물러터지는 대응. 김정일을 길들이라고 뽑았더니 오히려 길들여지고 있다. 어처구니없다. 대한민국 민간인을 금강산에서 쏴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개성공단 길을 열었다 닫았다 약 올리고, 또 그것도 성이 안차 아무 설명도 없이 민간인을 거의 일주일째 억류하고 있는데도 아무 말도 못하는 정권. 이게 김대중·노무현 정권과 뭐가 다르다는 것인가? 군사적 대응이나 개성공단 폐쇄와 같은 빅 카드를 스스로 버려 버리는 우파의 아마추어리즘이여! 이념과 철학, 정책, 대안 모두 없는 겁쟁이 정권이여! 그저 북한의 선처만 고개 빠지게 기다리는 심약한 정권이여!

대통령 이명박은 대북정책을 ‘정면대응’으로 전면 전환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안보를 어디로? 대통령 이명박에게 또 묻는다.

2009. 4. 3 문화일보 [[윤창중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