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대통령

30년전 박정희 대통령을 생각하며

동 아 2009. 9. 7. 12:36

"30년전 박정희 대통령을 생각하며..."

[외부 기고문]'시바스리갈 그리고 여자'

박승훈 기자  shpark@nbc1tv.com

 
박정희 대통령 서거 - 지난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서거한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주검 앞에서 오열하고 있는 장녀 박근혜. 사진/당시 대통령비서실/NBC-1TV
[글/통영 혜들꽃마을 강혁 촌장]박대통령께서 최후를 맞으신 궁정동 안가는 당시 중앙정보부의 전용 안가,즉 안전가옥이었다. 그리고 그 안가를 총괄하는 권한은 당연히 당시 김재규 부장이었다.

10.26이 터지고 당시 보안사령관이든 전두환에 의해 체포된 김재규는 자신의 실패한 역모의 정당성을 법정에서 역설하며 당시 언론을 후끈하게 달구었다.

그는 유신의 심장을 쏘았느니 어쩌니 하며 자신의 역모를 박정희의 유신독재로 호도하고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려했지만 명백한 역모였고 피흘린 쿠데타였다. 그는 당시 법정에서 쿠데타에 성공하면 혁명평위원회를 열어 사회를 일제히 정화하려는 치밀한 계획을 역설하기도 하였다. 아마 그 쿠테타가 성공했으면, 지금의 유력 정치인중 살아남은 이가 거의 없었을 것이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아무튼 흑백시대인 그 시절, 강남은 남양주군으로 아직 개발도 되기 전 시절인 그 때 정보의 일번지라 하는 종로1가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비디오 업종이라는 당시로서는 첨단 사업을 갓 시작하던 필자로서는 10.26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들은 몇사람중 하나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건과 관련된 군부와 중앙정보부의 고위직 사람들이 10.26 이후 자주 들락거린 주 고객들이었기 때문이다. 일언하고 먼저 궁정동 만찬부터 살펴보자. 궁정동 만찬은 박대통령을 위한 저녁식사 초대이며 이는 김재규가 준비한 만찬이었다. 즉 박대통령을 초대한 주체가 궁정동 안가의 실질적 지배자인 김재규라는 사실이다.

그는 YH무역 사건과 김영삼의 제명으로 인해 야기된 부마사태등일련의 사건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자신의 문제점, 그리고 이에 대한 미국 카터정책의 민주화 요구와 미군철수에 반발한 한국의 자주적 국방태세인 핵무장 준비등 복잡한 세계 정세와 국내정세를 이용해 이참에 소위 권력을 잡아야 겠다는 야심에서 역성 쿠테타를 계획한 것은 대부분의 국민은 잘 알고 있다
.

 
재임 시절 농촌에 간 박정희 대통령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은사이며 혁명적 동지며 평생을 따른 주군 박대통령을 배신하고 총탄을 발사한 것이다. 그가 말한 야수의 심정으로 인면수심이 따로 없는 권력을 향한 발사였다.

그렇기에 그는 사전에 모든 암살 계획을 마치고 박대통령을 저녁식사에 초대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역모를 혁명으로 조작할 목적으로 인근에 정승화 당시 육군 참모총장까지 초대하여 저녁식사를 가지게 하였다.

그 당시 정승화 육참총장이 총소리를 듣게 되고 졸지에 김재규에 쓸려가며 가담 아닌 가담이 된 것 모두 김재규의 작품이다. 그 암살계획 중의 소품 하나가 바로 시바스리갈이고, 또 다른 소품 하나가 박정희 대통령의 채홍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재규의 오른팔 박선호 과장의 증언이었다.

김재규와 박선호는 재판 내내 자신의 쿠테타가 오직 박대통령의 잘못에서 기인한 것임을 강조하며 자신의 역성 쿠테타를 합리화 하려고 하였다. 모든 공작정치와 탄압정치의 산실인 중앙정보부가 발을 살짝 빼는 모습이 우습기조차 했지만 그게 여론조작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시절이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이런 역사의 진실을 거의 모른다. 특히 좌파들은 김재규가 영웅이라고 하는가 하면 악의적인 암살소품에 게거품을 물고 인터넷을 장식한다. 예를 들자면, 당시 모두 못살던 시절에 박정희는 안가에서 시바스리갈을 즐겨 마시고 채홍사를 통해 딸같은 젊은 여자애들을 불러 들여 성접대를 받은 것처럼 묘사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럼 먼저 요즘으로 치면 3-4만원이면 큰병을 살 수 있는 시바스리갈이 과연 양주급에 속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당시에도 고급으로 치는 발렌타인이 있었고 나폴레옹 꼬냑도 있었다.

그 당시 외항선을 타던 매형이 한국에 배가 닿을 때마다 가져온 술이 시바스리갈이고 조니워커 레드나 블랙이었다. 그만큼 당시에도 시바스리갈은 대중적인 양주인 셈이다.

그렇다면 암살을 기획한 중앙정보부는 비싼 양주를 내놓지 않고 왜 그 싼 양주를 놓았을까? 아주 중요한 의문점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만약 비싼 양주를 내놓았드라면 달러를 지극히 아끼는 박정희 대통령께서 화를 내고 나가실 염려가 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자녀들과 함께한 박정희 대통령 내외 
유력 정치인으로 부터 들은 실화중 하나가 박대통령께서 혁명 동지의 집에 초대받아 가신 적이 있는데, 각하가 오신다고 금술잔에 최고급 양주를 내놓으니까 박대통령께서 무척 화를 내시면서 '여기 막걸리나 소주는 없나?' 하고 바로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셨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니 김재규 역시 암살음모가 성공하기 위해 값싼 양주를 내놓을 수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박대통령께서 시바스리갈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암살을 준비한 중앙정보부가 시바스리갈을 도구로 준비한 것을 마치 박정희 대통령은 시바스리갈을 즐겨 마신 것처럼 오해하는 우리 젊은 세대들은 이런 진실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박대통령께서 제일 좋아하시는 술은 1번 소주 2번 막걸리 3번이 가끔 사치를 부리고 싶으실 때 마시는 맥주이다. 결론적으로 박대통령은 양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신다. 가난하게 자라셔서 장에 생우유를 소화시킬 카제인이라는 효소가 없어 생우유를 드시면 바로 설사를 하셔서 반드시 끓인 우유를 드시는 분이 무슨 양주 애호가가 되시겠는가?

또 하나는 자칭 채홍사라고 하는 박선호 과장의 증언인 여자 부분이다.김재규는 박대통령의 경호실 인력을 자신의 집인 궁정동에서 모두 사살하라고 지시했다. 10.26 그 살육의 현장에 십여발의총알을 맞고도 유일하게 살아남은 경호원은 오직 한명 뿐이다. 삽교천 행사를 마치고 허겁지겁 안가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던 경호원은 밥먹는 도중에 등뒤에서 쏘아대는 중앙정보원의 비열한 총탄 세례에 모두 죽어야 했다.

당시 박선호 중정과장은 자신의 고교 때부터 절친한 친구를.. 심지어 자신이 청와대 경호실에 천거해준 그 친구를 자신의 방에 유인했다가 김재규의 저격 총소리를 신호탄으로 친구의
가슴에 두발의 총을 쏘아 죽이기도 했다. 이 모두 권력욕을 향한 비정한 모습이며 광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우리가 다 아는 가수 한사람과 당시 초보 탤런트 한사람은 살아 남았다. 그들을 살려둔 저의가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곰곰히 생각해야 한다.


 
박정희 육영수 결혼식 사진(1961. 12. 6) 
한 식구처럼 다정하게 지내던 경호실 직원들을 모두 사살을 지시할 정도로 비정한 인물이 무엇때문에 총알 한발이면 해결할 여자들은 살려두고 그들에게 돈까지 쥐어 주며 그들의 집으로 모두 보냈을까 하는 점이다.

그건 그들이 바로 박정희 대통령의 여자 밝힘증으로 뒤집어 씌우고 두고 두고 증언하고 이용할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상상이 충분히 가능하다. 박대통령이 김재규에게 여자를 불러 앉히라고 한 적이 없다. 그들 스스로 여자들을 준비하고 불러 들여 박대통령의 양옆에 앉아 있게 하고 두고두고 자신들의 암살을 정당화하기 위해 당시 살려둔 것이라 보면 백프로 맞는 말일 것이다.

이후 시바스리갈과 박대통령의 양옆의 여자 둘은 궁정동 안가의 최후의 만찬,그 비정한 암살을 위한 도구에 이용됐음에 불구하고 두고두고 박대통령을 폄하하는 도구로 지금도 이용되고 있다.

박선호는 박대통령에게 소개한 여자가 200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이건 순전히 그 자신이 지은 소설일 뿐이고, 이를 확인할 사람이 단 한분도 없이 모두 돌아가셨다는게 단지 아쉬울 뿐이다. 그래 좋다, 그런 터무니 없는 소리도 진실이라고 하자. 그럼 우리가 그 흔한 단란주점이나 혹은 고급 룸싸롱에 초대 받아 가서 갑자기 옆에 앉혀 주는 여자를 나가라고 하는 남자가 있겠는가?

여자를 돌처럼 봐야 하는 스님 아니라 신부님일 지라도 갑자기 초대해준 사람이 여자를 자신의 곁에 앉히면 어떻게 할 것인가? 초대한 사람이 술을 따르게 하는데, 당시 독신이신 박대통령께서 무엇 때문에 여자들을 물리치겠는가?

김대중도 이번 자신의 일기에서 이야기 하지 않았는가? 박대통령은 자신이 실제 만나보니 너무나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고... 독신인 박대통령께서 젊은 여자가 따라주는 술 한잔 하시고 그들하고 세상 사는 이야기도 하고 좋아하는 가수가 나와 노래하면 그 노래듣고 그 얼마나 자연스런 풍경 아니던가?

새벽 퇴근길에 받은 전화
새벽퇴근(?)을 준비하던중 정치부 기자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애국시민임을 자처하는 사람이 "왜 박정희가 가해자로 둔갑되고 있느냐?.. "며 항의했다는 내용이다.

기자는 또 그 취재원이 "인터넷에 올라있는 좋은 글이 있는데, 그 글을 올려줄수 없느냐"며 정중히 제안했다는 이색적인 사연도 전했다. 보도국 컴퓨터를 다시 켜고 그가 지적했다는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 좋은 글이라는 게시물을 읽어 보았다.

내용이 다소 주관적이긴 했지만 사실성이 다분한 살아있는 체험담 그 자체였다. 우리 기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일단 '외부 기고문'이니 만큼 글에 대한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고 헤드라인으로 올리라고 지시했다. 그때가 자정이 임박한 시간이었다. [이광윤 보도국장 주]
박 대통령은 대통령이자 건강한 남자이지, 카톨릭 교황이나 성철스님 같은 종교적인 이유로 금욕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사람과는 틀린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미국의 존 F 케네디가 수많은 여자들과의 스캔들에 회자되었지만, 하나 물어보자. 케네디가 대통령 이전에 매력적인 남자 아니던가? 박대통령도 대통령 이전에 여자들이 볼 때 카리스마 넘치고 친절하고 다정하신 매력적인 남자 아닌가?

어찌되었든 아직 자아가 성숙하지 못한 젊은세대는 시바스리갈과 박정희 대통령의 여자들로 박대통령을 어찌하든지 폄하해 보려 하는 상대 세력의 조작에 자신도 모르게 푹 빠져 있다. 그 중독성은 자칫 역사적의 인물을 잘못 판단하는 오류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오늘의 인물이 사라지고 나면 그게 바로 역사의 시작이 된다.

앞으로 백년, 또 이백년 이렇게 세월이 흘러가고 역사에 기록될 때 결코 영웅이 폄하되거나 소외되는 경우는 없다. 당시에는 폄하 받아도 추후에 존경받게 평가하는게 역사다. 그게 또한 역사의 준엄한 공평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때의 눈가림으로 무늬만 영웅 행세를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역사는 진위 여부를 비교적 정확하게 또 반드시 가려내어 영구토록 그 인물을 철저히 분석하고 평가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을 인물 중 한사람임에는 틀림없다. 박정희, 그 분과 한 시대를 한 때 함께 살았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오천년 역사중 실제 마주친 우리의 행운이 아닐 수 없다.[편집/NBC-1TV 박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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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바로알리기 국민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