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대통령

박근혜 前 대표 곁의 박정희 시대 ‘원로 삼두마차’

동 아 2008. 4. 2. 11:15
박근혜 前 대표 곁의 박정희 시대 ‘원로 삼두마차’ 조국근대화 박정희

2007/06/05 18:57

아버지가 알아본 인재들 ‘경륜의 힘’으로 캠프 도와
박근혜 前 대표 곁의 박정희 시대 ‘원로 삼두마차’
김용환 한나라당 상임고문은 9일 오전 11시쯤 서울 한남동 자택을 나섰다. 대전을 방문하는 박근혜 전 대표를 돕기 위해서다. 75세인 김 고문은 전날 심한 배탈로 입원해 링거 주사를 맞았다. 그런 그가 오후 7시 귀가할 때까지 박 전 대표와 함께 다니며 충청지역 인사들에게 지원을 부탁했다. 김 고문을 수행한 이태용 아태경제연구소 이사는 “속병 때문에 아무것도 못 드시고 하루 종일 화장실을 오가야 하는 몸 상태였는데도 강행군했다”고 말했다.

김 고문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42세의 나이로 재무부 장관에 올랐을 만큼 승승장구한 경제관료였다. 이제 그는 자신을 알아줬던 사람의 딸을 돕고 있다. 김 고문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가 저승에 가서 박 전 대통령을 만나면 면목이 있어야지”라고 말하곤 한다.

박근혜 전 대표 진영에는 김 고문처럼 박 전 대통령 시절의 끈이 이어져 중책을 맡은 인사가 두 명 더 있다. 남덕우 전 총리와 안병훈 캠프 본부장이다. 정책을 총괄하는 남 전 총리는 경제부총리로, 전략을 지휘하는 안 본부장은 청와대 출입기자로 각각 박 전 대통령과 연이 닿았다. ‘원로(元老) 3인방’은 먼발치서 조언만 하는 역할이 아니라 젊은 참모 못지않게 움직인다. 박 전 대표는 “이분들은 국가 발전에 참여하신 경륜이 있어서 한마디 한마디가 다 소중하다”고 말한다.

세 사람이 대선 정국에 뛰어든 이유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보은 차원만은 아니다. 이들은 박 전 대표에 대한 기억을 한 자락씩은 가슴에 담고 있다.

남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 유고시 박 전 대표가 휴전선을 먼저 염려했다는 유명한 일화의 현장 목격자다. 남 전 총리는 “지난해 칼부림을 당하고 ‘오버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모습에서 그때가 떠올랐다”며 “박 전 대표는 이 나라가 요구하는 운명의 여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의 서강대 진학도 어쩌면 남 전 총리 덕이다. 서강대 교수 출신인 남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이 하루는 내게 ‘서강대가 어떤 대학이냐’고 물어 ‘대학다운 교육을 하는 학교’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고 했다.

남 전 총리는 2002년부터 박 전 대표의 후원회장을 맡아 도움을 줬다. 83세이지만 매주 금요일 국회의원ㆍ교수단의 박 전 대표 정책자문회의를 주재한다.

김용환 고문은 청와대 경제수석 시절 박 전 대표를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있다. 사연은 이렇다.

“하루는 여비서가 ‘사모님 전화입니다’ 하는 거야.(당시 ‘사모님’은 육영수 여사에 대한 호칭이었다. 수석의 부인은 사는 동네를 붙여 ‘홍은동 사모님’식으로 불렀다. 한 비서관이 육 여사의 전화를 부인의 전화로 착각해 ‘당신 왜 쓸데없이 상황실에 전화를 하고 그래’라고 말하는 실수를 한 뒤에 굳어진 관행이라고 한다.) 수화기를 드니 육 여사께서 ‘우리 아이가 전자공학 공부를 하는데 경제에 관해 궁금한 게 있다는데 좀 가르쳐주세요’라고 해서 ‘학생을 보내십시오’ 했어. 얼마 후 고교를 갓 졸업한 듯한 아가씨가 사무실에 나타났는데 두 손을 앞에 곱게 모으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더니 ‘제가 전자공학과에 다니는데 이런 것을 어떻게 해석하나요’라며 통화량ㆍ소비함수 같은 것을 물었어.”

그 뒤로 청와대를 나와 박 전 대표와 마주할 일은 없었다. 김 고문이 박 전 대표를 다시 만난 것은 2000년. 김종필 전 총리와 정치적인 결별을 하고 한국신당을 창당할 무렵이다. 김 고문은 “실은 박 전 대표를 신당 대표로 영입하려 했다”며 “만나서 ‘아버님의 통치철학을 이어받아 다음 기회에 국가를 영도하는 역할을 하는데 내가 뒷받침할 테니 손잡고 일하자’고 장시간 설득한 일이 있다”고 공개했다. 그는 “박 전 대표가 ‘뜻은 고마운데 내가 한나라당 부총재로서 당을 떠날 수가 없다’며 사양했다”고 밝혔다. 이후 탄핵으로 허물어진 한나라당을 살려내 제1당으로 일으키는 과정을 보며 박 전 대표가 대통령감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한다.

69세로 셋 중 가장 ‘젊은’ 안 본부장은 조선일보 기자로 청와대를 출입하면서 박 전 대표를 알게 됐다. 김성진 전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에서 ‘야당’ 역할을 하던 육 여사가 돌아가신 후 박 전 대통령에게 민의를 가장 솔직하게 전달하던 존재가 박 전 대표”라며 “박 전 대표는 청와대 출입기자단을 자주 접촉하며 여론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안 본부장 역시 기자단의 일원으로 박 전 대표와 테니스를 치고 박 전 대통령과 막걸리를 마시며 대화를 많이 했다.

안 본부장은 정치부장이던 1979년 기사 때문에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등에게 해임압력을 받을 때 박 전 대표가 이를 막아줘 크게 신세를 졌다. 10ㆍ26 이후 청와대에서 나온 박 전 대표가 힘겨운 시절을 보낼 때 안 본부장을 비롯한 옛 청와대 기자들은 생일파티를 마련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 박 전 대표의 부탁을 받은 안 본부장이 밤잠을 못 자는 고민 끝에 캠프행을 결심한 배경엔 이런 역사가 있다.

박 전 대표의 측근인 유승민 의원은 “이분들은 박 전 대표를 오래 봐왔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잘 알고 박 전 대표에게 지혜를 일깨워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