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과 인민혁명당에 대하여

동 아 2012. 9. 16. 17:46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과 인민혁명당에 대하여

 

베트남 전쟁과 1975년4월30일 베트남 패망과 공산화를 이해하자

특별취재팀  |  news@newstown.co.kr

승인 2012.09.15  03:4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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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삽을 들고 일하는 모습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을 이제 시대적 배경과 함께 분석해 보자!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72년 유신이 채택되었다. 사람들은 이때를 박정희 유신 독재시대라 한다. 그렇다면, 40년 전 세계는 어떤 시대였을까?

민주주의 역사가 300년 이상으로 가장 발달된 민주국가 영국에서는 자치구인 북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연방 선거권을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재판받을 권리조차 가질 수 없도록 법을 제정했던 때가 1972년, 그 유명했던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 사건이 바로 이 법 제정에 저항하여 평화롭게 행진하는 민간 시위대를 영국군이 무차별 학살했던 때가 40년 전 그때였다.

그리고 민주주의 모범 국가라는 미국은 그때 어떠했던가?

비록, 흑인들의 저항과 희생으로 폐지되었지만 반민주적이고, 반인륜적, 인종 차별법이 버젓이 통과되고 있었던 때가 그때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웃 나라 대만의 장개석은 정부에 저항하는 인민 수만 명을 무자비하게 학살하였고, 북한의 김정은처럼 대를 이어 세습통치 40년을 하면서 정적을 숙청하고자 정치적 반대자들을 100만 명 이상을 죽게 만든 때가 그때였다.

대만을 가 보아라. 아직도 곳곳에 서있는 장개석 동상이 김일성 동상처럼 수백 개가 위용을 자랑하며 버티고 서있다.

유신을 마치 대한민국의 나치 정권처럼 떠들며 비판하는 사람들은, 장개석이 수만 명의 인민을 학살한 ‘2.28 사건’ 정도는 알고 좀 떠들어도 떠들어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 유신 당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지금과 같이 제대로 된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나라가 있었는지를 먼저 알고 유신을 비판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묻겠다. 1960년대 대한민국의 실상은 어떠했는가? 북한과 태국이 150달러, 아시아 용들이 4~5백 달러 일 때 남한은 76달러였으며, 정부 일 년 예산의 80%를 미국의 지원으로 근근이 연명하며 춘궁기가 되면 굶어 죽는 사람이 흔하게 발생했지만 뉴스거리조차 안 되던 시대였다.

먹는 것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빈민 국가가 대한민국이었음은 우리 국민 누구나 다 잘 아는 사실이 아닌가.

자원, 자본, 기술, 그 무엇 하나 없는 불모지 상태에서 근면 성실한 국민들을 리더 하며 아시아의 ‘용’들과 어깨를 견줄 만큼 전무후무한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이룩하여 전 세계가 깜짝 놀랐으며, ‘한강의 기적’ 이라고 찬사를 보내기 시작하던 때, 가발 팔고, 와이셔츠 팔고, 스웨터 만들어 팔던 경공업에서 중화학 공업체계로 국력의 조직화를 꾀하던 때, 그때가 바로 40년 전 유신 시대였다.

북한의 김일성이 남한에 무장테러를 일으킨 사건 만도 600 여건, 철책선 내무반에서 자고 일어나면 목 없는 전우의 시체가 나뒹굴고 있을 때, 그때 우리는 총알 하나 만들 줄도 몰랐고 능력도 없었다.

당시, 베트남(월남)전 패전과 1975년 3월 10일 베트공의 총공세로 1975년 4월 30일 베트남이 패망하여 공산화가 되자 북한 김일성의 오판으로 남침의 우려가 가장 클 때였다. 지금 대선시기에 논란이 되고 있는 제2차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도 1975년 4월 8일 대법원 판결로, 당시 시대 상항은 극도로 국가의 안보가 불안한 시기, 분단국들의 공산화 도미노 예상시기, 전시에 해당되므로 극약처방을 하였다고 본다.

1979년에는 미국이 방위정책 변경으로 주한 미군을 철수 하겠다 하여, 미 대통령 ‘카터’에게 미군을 “철수하면 우리는 살기 위해 핵으로 무장할 것이다”라고 협박하며 힘없는 민족의 서러움을 통탄, 이 나라 대한민국의 안위를 다른 나라에 맡길 수 없다 통감한 박 대통령은, 무수한 방위 산업을 육성 탱크와 미사일을 비롯한 여러 국산 장비들을 양산하며 국력의 극대화를 꾀하고자 유비무환의 대비책으로 자력 국방의 기틀을 이루려고 하던 때, 그때가 바로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유신 시대였다.

그때 당시 박 대통령은 밖으로는 북한 공산주의와 싸우며 나라를 지켜야 했고, 안으로는 민주주의와 인권으로 포장한 ‘민주 팔이 정치꾼’ 들의 모함과 데모 선동꾼들로 인한 사회 혼란 속에서도 오직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했다.

박 대통령을 그렇게도 비난하는 사람들아!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를 위해 독재자 오명을 뒤집어쓰고라도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며 온 정력을 다 했던 박 대통령의 애국적 ‘뜨거운 가슴’을 조금이라도 생각해 보았는가?

힘이 없어 나라를 일본에 빼앗겼던 36년 식민지 시절의 뼈아픈 경험을 되풀이 않고자 절치부심하며 처절하리만큼 비장했던 박 대통령의 오기에 찬 ‘차가 왔던 가슴’을 단 한 번만이라도 생각해 보았는지 묻고 싶다.

박 대통령은 ‘우리도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자신감, 용기와 희망, 비전을 제시하며 스스로 그리고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지도력을 발휘하였으며 반공을 국시에 두고 부국강병을 성취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졌다.

오로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온몸을 불사르며 근대화된 선진조국을 만들고야 말겠다며, 박 대통령이 민주주의는 잠시 유보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실상과 고뇌에 찬 그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생각해 보고 유신을 독재라고 핏대 세워 비난 하라고 말하고 싶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사후(死後) - 미국 CIA 보고서는 박 대통령을 이렇게 정의했다.

“독단적이고 자존심이 강했으며 카리스마와 서민적 이미지를 함께 갖춘 인물이었다. 직관력과 통찰력을 겸비하면서 추진력이 매우 강했던 인물이었다. 남한의 실질적 발전은 그로 인해 비롯되었고…, (중략), 그의 일반적 생활은 청렴하기 그지없었다.”라고….

박 대통령을 그렇게도 비판하는 사람들아! 민주화를 목에서 피가 나도록 외치던 자들이 원하던 대로 이 나라를 15년 넘게 통치해 오면서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찬사와 부러움으로 ‘새마을운동’을 배우겠다고 하루가 멀게 날아와 가르쳐 달라고 머리를 조아리던 국가들이 ‘용’이라던 대한민국을 이제 ‘자살천국’으로 보게 되였으며, 대한민국을 배우자며 전 공무원들에게 하루 한 시간씩 박정희 교육을 시키던 중국이 이제는 한국이 어떻게 망해 가는가를 배우라며 인민들에게 학습하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을 비난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묻겠다.

박 대통령 이후 우리나라가 지금 무슨 이유로 이렇게 무너지고 있으며,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계속 발전하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거꾸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이유를 말해 보시오!

인류 역사상 세계사를 통틀어 18년간 집권하면서 국부를 20배 이상 성장시키고 늘려 논 정치지도자가 지구상에 단 한 명이라도 있는지,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 이래 박 대통령만치 청렴결백하며 ‘정치꾼’이 아닌 진정한 지도자요 대통령인 애국자가 있었다면 한번 말해 보기 바란다.

전 세계를 통틀어 이렇게 위대한 애국자를 부관참시하려는 나라가 지구상에 어디 또 있단 말인가?

민주화로 포장된 정권이 들어선지 20년, 김영삼은 민주주의 화신이란 교언(巧言)으로 미혹( 迷惑)하고, 김대중은 온갖 거짓말로 국민을 속여 가며 자신의 부귀영달을 위해 국민을 철저하게 배신하였고, 노무현은 선한 양으로 행세하면서 사기꾼 김대업을 앞세워 온갖 흑색선전으로 젊은이들을 선동하여 정권을 휘어잡고선 개혁이니 역사니 하며 지역, 이념, 세대, 빈부 등 국민들을 분열과 갈등으로 갈라놓았다. 이명박은 또 어떠한가 말이다.

공은 빼고 과만 조명하며, 박 대통령을 뜯어내 부시고 빠개고 하는 것이 진정 역사를 똑바로 세우려고 하는 것이냐 말이다.

제아무리 박 대통령을 폄하 하려 발버둥 친다 해도, 역사가 흐른 후에 지금의 말 많은 정치꾼 지도자를 기억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도, 박정희 대통령의 이름은 대한민국 민족중흥의 시조로써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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