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저는 충격적인 기사를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올해 서울대학교 입학생들을 상대로 '북한을 어떻게 보느냐?'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놀랍게도 응답자의 69퍼센트가 북한을 '우리가 협력해야 할 대상' 혹은 '도와주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10명 중에 7명이 북한을 어떤 '적대적 대상'으로 전혀 여기지 않고 오로지 '교류해야 할 동반자'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당연히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결과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에게는 '반공 교육'이라는 것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 되었으며, 그 대신에 이들이 자라나면서 듣는 것이란 전교조 교사들의 '반미 교육'이나 좌파 정치가들의 '친북 선동'밖에 없으니, 그런 가운데서도 23퍼센트나마 북한을 '주의해야 할 경계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기적이라고 할만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충격 정도로만 끝날 일이 아닙니다. 앞으로 정치계, 재계, 법조계, 언론계, 교육계 등 그야말로 각계각층에서 지도자가 되어야 할 인재들이 북한을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과연 이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만 해도 저로서는 정말 두렵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6.25 전쟁 60주년'을 맞이하고 있는 한반도는 여전히 '휴전(休戰) 상태'입니다.
즉 '종전(終戰)'된 것이 결코 아니라 어디까지나 '잠시 전투를 멈추고 있을' 뿐이며, 다른 말로 하자면 아직까지도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적과 대치하고 있는' 엄연한 전시(戰時)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진무구한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은 그 '적군'을 '타도 대상'은커녕 '경계 대상'으로도 보지 않고 그저 '원조와 협조의 대상'으로만 여기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물론 북한을 그런 식으로 대하는 것이 소위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길이 아니겠느냐고 말하겠지만, 그것은 정말 어리석은 생각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간 저는 그처럼 '적'을 '형제'처럼 여기고 대하는 나라가 과연 어떻게 될 수밖에 없는지를 성경의 역사를 통하여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협박하는 적과 타협하려 하면 오히려 더 큰 위협을 당할 뿐입니다.
1절부터 6절에 기록하기를 "1아람 왕 벤하닷이 그 군대를 다 모으니 왕 삼십이인이 저와 함께 있고 또 말과 병거들이 있더라 이에 올라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치며 2사자들을 성중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벤하닷은 이르노니 3네 은금은 내 것이요 네 처들과 네 자녀들의 아름다운 자도 내 것이니라 하매 4이스라엘 왕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내 주 왕이여 왕의 말씀 같이 나와 나의 것은 다 왕의 것이니이다 하였더니 5사자가 다시 와서 이르기를 벤하닷은 이르노라 내가 이미 네게 보내어 말하기를 너는 네 은금과 처들과 자녀들을 내게 붙이라 하였거니와 6내일 이맘때에 내가 내 신복을 네게 보내리니 저희가 네 집과 네 신복의 집을 수탐하여 무릇 네 눈이 기뻐하는 것을 그 손으로 잡아 가져가리라 한지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아람 왕 벤하닷"이 아람 주변에서 소규모 부족을 이루고 있던 "왕 삼십이인"들과 함께 연합군을 형성하여 북조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포위 공격해 왔을 때였습니다.
벤하닷 왕은 압도적인 전력을 과시하면서 북조 이스라엘의 왕 아합에게 "네 은금은 내 것이요 네 처들과 네 자녀들의 아름다운 자도 내 것이니라"고 전갈을 보내었습니다.
여기서 '네 처들과 네 자녀들'이란 꼭 아합의 처와 자녀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아름다운 자'들을 볼모나 노예로 잡아가겠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하여튼 벤하닷이 보낸 전갈의 요지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공물을 갖다 바치지 않으면 싹 쓸어버리겠다는 공갈협박이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로서는 실로 굴욕적인 요구였지만 벤하닷의 기세에 눌린 아합 왕은 "내 주 왕이여 왕의 말씀 같이 나와 나의 것은 다 왕의 것이니이다"라고 지극히 비굴한 자세를 취하면서 그의 요구를 다 들어주겠다고 응답했습니다.
물론 아합은 그렇게 하면 벤하닷이 포위를 풀고 회군하리라고 기대했을 것이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원하는 대로 무조건 다 보내 주겠다고 하는 아합의 저자세에 더욱 기고만장해진 벤하닷은 처음의 요구에서 한술 더 떠서, 아예 자기 부하들을 직접 보내어서 아합의 왕궁은 물론이요 이스라엘의 모든 집들을 다 수색하여 닥치는 대로 약탈해 가겠다고 통보해 왔습니다.
아합이 약한 꼴을 보이면서 숙이고 들어가니까 벤하닷은 적당히 타협해 주기는커녕 훨씬 더 악랄한 위협을 가해 왔던 것이었습니다.
9절 이하에 보면, 벤하닷의 야심이 그렇게 드러나게 되니까 아합도 더 이상 그 요구를 수용해 줄 수는 없다고 대답했고, 그런 회답을 받자마자 벤하닷은 당장 사마리아 성을 본격적으로 공격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사마리아 성을 초토화시키겠다는 벤하닷의 위협에 아합이 11절에서 "갑옷 입는 자가 갑옷 벗는 자 같이 자랑치 못할 것이라"고 한 말은 '전쟁을 시작해 보기도 전에 이미 이긴 것처럼 자랑할 수는 없다.' 즉 '승패는 결과를 보아야 알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북조 이스라엘과 아람을 주축으로 한 벤하닷의 연합군 사이에 피치 못할 전쟁이 시작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아합은 그나마 나중에라도 정신을 차렸지만, 벤하닷과 같은 국제적 깡패의 공갈협박에 끝까지 비굴하게 '협조'로 일관하다가 끝내 된통 당하고만 대표적인 정치가가 바로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까지 영국의 수상이었던 체임벌린이었습니다.
당시 독일의 히틀러는 이미 '베르사이유 조약'을 깨뜨리고 엄청난 군비 확장을 서두르고 있을 때였습니다.
누구나 다 유럽에서 다시 한 번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될 것을 염려하고 있는 가운데서 체임벌린은 그처럼 패권주의적 팽창적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히틀러를 잘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자기뿐이라는 착각에 빠집니다.
1938년 3월에 오스트리아를 독일에 합병시킨 히틀러는 체코슬로바키아 내에 독일인들이 많이 살고 있던 수데텐란트 역시 독일에 통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물론 체코 정부는 완강히 거절했고 독일군 공격에 대비하여 군사 동원령까지 내렸는데, 체임벌린이 소위 '4강 회의' 개최를 주선하여 결국 그해 9월 말에 '뮌헨 협정'을 이끌어내었습니다.
그 협정이라는 것의 요지는 간단히 말해서 '전쟁을 막기 위해서' 수데텐란트를 독일에게 양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후에 체임벌린은 그야말로 '평화의 사도'처럼 의기양양하게 영국으로 돌아왔지만, 당시 재야에 있던 처칠은 그것을 두고 "조국을 이리에게 던져준 치명적 오산"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공갈협박만으로 자기 욕심을 채운 히틀러는 그 다음에 어떻게 했습니까?
수데텐란트를 넘겨받은 지 약 반년 후인 1939년 3월에 그는 체코슬로바키아 전체를 침공하여 독일에 합병시켰으며, 그해 9월에는 폴란드마저 침공해 왔습니다.
히틀러에게 조금만 양보하면 전쟁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히틀러를 가리켜 "자신의 말을 지킬 줄 아는 신뢰할만한 인물"이라고 떠벌렸던 체임벌린은 그렇게 뒤통수를 맞고 나서야 "나는 오늘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입니다."라는 넋두리를 대국민 방송이라고 하면서 수상직을 사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 김정일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와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 친북 정권이 들어서 있던 10년 동안 소위 '햇볕 정책'으로 북한을 개방시키겠다고 하면서 쌀이다 기름이다 달러다 하면서 얼마나 많이 갖다 바쳤는지 그 정확한 액수조차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한반도에 평화 공존의 길을 열었다고 해서 노벨상까지 받았던 우리나라의 대통령께서 '합리적인 지도자'라고 극찬했던 김정일은 그 양보와 타협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해 주었습니까? 1차 및 2차 연평해전을 도발했고 원자폭탄을 실험했으며 동해에 무장간첩을 태운 잠수정을 침투시켰고 금강산 관광객을 사살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정말 뻔뻔스럽게도 우리 정부를 향해서는 '이것 내놔라, 저것 내놔라' 하는 협박성 요구는 끊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하여 '감사'하게 생각하거나 상호 '협조'할 자세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과연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이런 일이 여러분의 친구라는 사람 사이에서 생긴다면, 여러분이 거래하고 있는 업자와의 관계에서 일어난다면 그래도 여러분은 상대방을 '원조'와 '협조'의 대상으로 생각하겠습니까?
청년 여러분들께서는 이런 북한 공산정권을 제발 '막연히' 도와줄 대상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좀 사리를 따져서 판단해 보세요.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부가 보여 준 선의에 대하여 저 독재자 김정일이 호의적으로 반응하고 신실하게 약속을 지킨 것이 단 하나라도 있습니까?
깡패가 위협해 올 때에 약한 꼴만 보이면 계속 더 큰 괴로움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은 국제관계에 있어서는 더더욱 철칙입니다.
남북한으로 나뉜 이래 대한민국을 향하여 오직 공갈협박만으로 일관하고 있는 북한의 공산정권 앞에 그저 저자세로 타협하려 하는 것은 김정일 독재자로 하여금 더욱 기고만장하게 우리를 위협하도록 만들어 주는 이적행위일 뿐이라는 사실을 꼭 자각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원수를 살려 주면 결국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31절부터 33절 말씀에 "31그 신복들이 저에게 고하되 우리가 들은즉 이스라엘 집의 왕들은 인자한 왕이라 하니 만일 우리가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테두리를 머리에 이고 이스라엘 왕에게로 나아가면 저가 혹시 왕의 생명을 살리리이다 하고 32저희가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테두리를 머리에 이고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러 가로되 왕의 종 벤하닷이 청하기를 나의 생명을 살려주옵소서 하더이다 아합이 가로되 저가 오히려 살았느냐 저는 나의 형제니라 33그 사람들이 징조로 여기고 그 말을 얼른 받아 대답하여 가로되 벤하닷은 왕의 형제니이다 왕이 가로되 너희는 가서 저를 인도하여 오라 벤하닷이 이에 왕에게 나아오니 왕이 저를 병거에 올린지라"고 기록했습니다.
북조 이스라엘과 아람 연합군의 전쟁은 양쪽의 전력만 비교해보자면 전혀 상대가 될 수 없는 것이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게 되자 그 양상은 전혀 딴판으로 흘러갔음이 본문 13절부터 3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한 선지자"가 아합 왕을 찾아와서 하나님께서 "오늘 저희를 네 손에 붙이리니"라고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이길 것이라고 예언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군을 얕잡아 보고 술을 "마시고 취한 중"에 있던 벤하닷과 32인의 왕들의 연합군은 그날의 초전에서 대패를 당하고 퇴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후에 벤하닷은 정신을 차리고서, 이번에는 자신의 막강한 전력을 최대로 활용할 수 있는 "평지"에서 이스라엘군과 대항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작전을 짜고는 전열을 재정비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준비하고 "칠 일" 후에 벌어진 접전에서도 이스라엘 군은 아람의 보병 십만을 죽이는 압승을 거두게 되었고, 벤하닷은 또 한 번 도망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처럼 북조 이스라엘 군이 압승을 거둔 후에 일어난 일이 조금 전에 함께 읽은 본문의 사건입니다.
벤하닷 왕의 신복들은 그냥 숨어 기다리다가는 언젠가는 잡혀 죽을 터이니 차라리 함께 모두 다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테두리를 머리에 이고 이스라엘 왕에게로 나아가면 저가 혹시 왕의 생명을 살리리이다"라고 벤하닷에게 권유합니다.
그런데 벤하닷 왕이 그처럼 무조건 항복을 하고 나온다는 소식을 들은 아합 왕은 "저가 오히려 살았느냐 저는 나의 형제니라"고 했습니다.
물론 아합과 벤하닷은 아무 혈연관계가 있는 사이가 아니었으며 더구나 벤하닷은 조금 전까지 북조 이스라엘을 침략하고 위협하던 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합 왕은 그를 '형제'라고까지 부르면서 반겨 주었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아합 왕은 벤하닷으로부터 몇 개의 성읍을 받고 또 아람의 수도 다메섹에 아합을 위한 특별 거리를 만들 수 있게 해준다는 "약조"만 받고서 벤하닷을 곱게 놓아주고 말았습니다.
이어지는 38절 이하 43절에 기록하기를 "38선지자가 가서 수건으로 그 눈을 가리워 변형하고 길 가에서 왕을 기다리다가 39왕이 지나갈 때에 소리질러 왕을 불러 가로되 종이 전장 가운데 나갔더니 한 사람이 돌이켜 어떤 사람을 끌고 내게로 와서 말하기를 이 사람을 지키라 만일 저를 잃어버리면 네 생명으로 저의 생명을 대신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은 한 달란트를 내어야 하리라 하였거늘 40종이 이리 저리 일 볼 동안에 저가 없어졌나이다 이스라엘 왕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 41저가 급히 그 눈에 가리운 수건을 벗으니 이스라엘 왕이 저는 선지자 중 한 사람인 줄 알아 본지라 42저가 왕께 고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저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저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 43이스라엘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 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르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그런 어처구니없는 소식을 듣게 된 어느 선지자가 아합 왕을 찾아가서 책망하는 내용입니다.
35절부터 37절에 보면, 그는 아합 왕을 만나기 전에 먼저 자기 "동무"에게 "나를 치라"고 요구했는데, 그 동무가 그것을 거부하자 "사자가 너를 죽이리라"고 저주했으며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벤하닷을 죽이지 아니한 아합 역시 똑같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될 것을 상징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후에 변장을 하고 아합 왕을 찾아간 그 선지자는 우선 비유를 들어 말하면서, 자기가 전쟁터에 나갔다가 다른 동료가 붙잡은 포로를 대신 지키게 되었는데 그만 그 포로를 잃어버렸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고 아합 왕에게 물어봅니다.
아합 왕은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고 즉 다시 말해서 '네가 저지른 일이니 당연히 네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선지자는 그와 똑같은 짓을 바로 아합 왕 당신이 저질렀다고 지적하면서, 하나님께서 아람 왕 벤하닷을 아합에게 맡겨서 처형시키려 하셨는데 그를 그냥 놓아주었으니 당연히 그 책임도 본인이 져야 할 것이 아니냐고 책망했습니다.
그래서 4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합을 향하여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저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저의 백성을 대신하리라"고 저주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아합 왕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북한의 김정일은 우리가 '화합과 공조'라는 따위의 미명으로 타협해야 할 '정치적 동반자'가 결코 아니라 완전히 제거해야 할 '민족의 원수'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지금 북한 2천만 동포 중에 한 명으로 살고 있다고 한 번 가정을 해 보십시오.
옥수수 배급식량조차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서 수백만 명이 아사해 가고 있으며, 아녀자들이 중국으로 넘어가서 몸을 팔아서 자기 가족을 먹여 살릴 쌀과 돈을 구해 와야 하는 나라입니다.
소위 '성분'이 나쁘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출세할 길이 없으며, 십육칠 세의 순진한 자기 딸을 '기쁨조'라는 희한한 이름으로 김정일의 성적 노리개로 바쳐 놓고도 부모가 그것을 영광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김정일은 벤츠 자동차와 고급 꼬냑의 세계 제1위 고객이면서도 북한 인민들은 밤에 위성사진을 찍어 보면 평양시 외에는 전국에 전기불빛이 거의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살고 있으며, 김정일 자신은 대한민국의 오락 프로 비디오를 그렇게 즐겨보면서도 인민들은 라디오로 외국 방송만 들어도 정치범 수용소에 집어넣는 나라인 것입니다.
그처럼 그야말로 '지옥 같은' 북한에 살고 있는 2천만 인민들이 자기네들을 그렇게 압제하고 있는 김정일의 정권을 연장시켜 주는 것을 과연 고맙게 생각하겠습니까?
청년 여러분들은 북한이 이런 공산독재체재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정말 올바른 '민족 공조'라고 판단이 됩니까?
북한의 김정일과 공산정권은 '민족의 원수'일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대적'입니다.
공산주의 자체가 철저한 무신론에서 출발한 사상입니다.
더구나 6.25사변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교회들을 파괴하고 신자들을 죽였으며, 지금도 북한의 지하교회를 그 얼마나 끔찍하게 박해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이런 악한 원수를 무슨 '형제 사랑'이니 하면서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입니까?
6.25 전쟁 때 중공군의 불법개입으로 그 공산정권을 완전히 말살시키지 못했던 것은 정말 한스러운 일입니다.
그 뒤에도 김일성이 죽었을 때 국제사회 전문가들이 5년 안에 절로 망할 것이라고 보았던 김정일 정권을 '햇볕 정책'이라는 미명으로 기사회생시켜 준 것은 문자 그대로 '벤하닷'을 고스란히 살려 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원수'를 없애버리려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형제'처럼 대해주는 것은 바로 그 자신도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좌파 정치인들과 친북 종교인들은 이 나라의 청년들과 학생들의 사고 구조 속에 바로 그런 무서운 용공 및 친공 사상을 주입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김정일의 목숨을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대신해야 하게 되는 사태, 당연히 망하게 해야 할 공산독재정권을 오히려 유지시켜 줌으로써 결국 대한민국의 존폐가 위태로워지는 꼴을 당해 보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원수를 '형제'라고 생각하고 민족의 반역도당을 '사랑을 베풀어 주어야 할 대상'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이 '저의 목숨과 저의 백성을 대신해야만 하는' 사태를 자초하는 무서운 망국병임을 제발 똑바로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얼마 전에 이명박 대통령의 '천안함 대국민 담화'가 있은 후 한 통의 편지가 청와대로 배달되었습니다.
그 봉투 안에는 2급 지체장애자로서 한 달에 48만원의 정부 보조를 받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 3명이 "나라와 이웃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적은 돈이나마 우리나라를 지키는 데 사용해 주시면 좋겠다."고 하면서 53만원의 우편환을 동봉했습니다.
이 대통령께서는 "마음이 숙연해졌으며" "정성에 깊이 감동했다."고 하면서 "대통령이자 국군통수권자로서 강한 나라를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을 다시 한 번 마음깊이 새겼습니다."라고 감사의 답장을 보내신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 성금은 천안함 추모사업에 사용될 계획이라고 합니다.
거의 같은 날 인터넷에서는 북한의 '전면전 위협'이 과장되어 "북한 전쟁 선포"라는 말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다른 검색어가 그 '북한 전쟁 선포'를 제치고 1위 자리를 탈환했는데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바로 "김연아 열애설"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전쟁이 터지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전혀 사실무근의 '김연아 열애설'에 간단히 밀려나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김정일이 진짜로 전면전을 펼쳐온다 해도 먼저 간첩 해커들을 이용해서 '아무개 연예인 열애설'만 하나 띄워 놓으면 이 나라의 청년들은 북한 공산군이 휴전선을 돌파하여 서울 시내에 진군할 때까지도 그저 인터넷만 들여다보면서 그 열애설에 대한 댓글만 부지런히 달고 있을 것입니다.
공산주의의 맛을 보았던 세대, 청년 여러분들이 '수구 세대'라고 비난하는 어른들은 지금 이 대한민국을 북한 공산독재정권의 위협으로 지켜내는 것이 제일 중요한 급선무인지를 잘 알고 있는 까닭에 그 최소생계비 가운데서도 국방성금을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산주의'는 전혀 모르는 가운데 그저 '주체 민족'이라는 구호에만 애틋한 감정으로 반응하고 '6.25 전쟁'은 발생연도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가운데 그저 '평화 공존'이라는 선동에만 선뜻 호응하는 청년 여러분들은 '6.25는 북침이었다.'는 말과 '6.25는 남침이었지만 통일전쟁이었다.'고 서로 상반되는 내용을 동시에 주장하는 좌파 정치가들의 이 억지논리에 고스란히 세뇌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청년 여러분, 제발 좀 대답해 보세요.
'광우병 조작 보도'를 듣고서는 학교 수업까지 빼먹고 벌떼처럼 거리에 쏟아져 나와 반미 데모를 했으면서도, 중국으로부터 실제로 '멜라민'이 함유된 식품이 수입되었을 때에는 왜 단 한 명도 '반중 데모'를 하지 않았습니까?
미군 작전 중에 '여중생 2명이 사고사'를 당했을 때에는 온 대한민국 천지 곳곳에서 반미의 촛불을 켜 들었으면서도, 천안함의 피격으로 '국군 장병 46명이 전사'를 당했는데도 왜 여러분의 손은 북한에 대하여 항의하는 촛불 한 개를 들기는커녕 오히려 '정부의 자작극일지도 모른다.'는 댓글이나 아직도 치고 있는 것입니까?
저는 정말 궁금해서 미칠 지경입니다.
도대체 우리나라의 청년들과 학생들의 정의감과 양심이라는 것이 어떻게 되어 있기에 그렇게 판단하고 행동하는지 제발 그 이유를 좀 말해 주세요.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휴전선 철책선 안에는 북한군 GP와 겨우 1.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대한민국 국군장병들이 '유서를 써 놓고 머리카락을 잘라 남겨 놓은' 후에 밤낮으로 경계근무를 서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 북한이 '도와주고 협조해야 할 동반자'라고요?
여러분이 그렇게 순진무구하면 저 공산독재자가 감동받을 것 같습니까? 김정일이 정말 그렇게 '합리적인 지도자'요 '같은 피를 나눈 민족'이라면 우리가 그렇게 퍼 주는 동안에 우리나라는 평화통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긴장완화는 벌써 되었어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여러분처럼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상아탑을 출입하고 있는 지성인 청년들이 김정일 같은 최악 저질 인간에게 속는다는 것은 너무나 바보짓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대한민국의 차세대 청년들과 학생들의 다수가 이처럼 친북좌파 사상에 물들게 된다면 조국의 미래는 너무나 두렵습니다.
저는 이런 상태로 가다가는 북한 공산독재 정권이 스스로 망한 후에도 바로 이 대한민국 안에서 '공산당'이 합법적으로 세워지고 '공산주의'가 부활할 가능성까지 지극히 농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우리 기독신자들의 목숨'이 '공산 독재자의 목숨'을 대신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그런 일을 상상조차 하기 싫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우가 현실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조국의 청년들과 청소년들이 이 '6.25 전쟁'의 교훈을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역사를 배우는 것은 똑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지는 않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분단 후의 지난 60년 역사가 교훈해 주고 성경이 경계하며 하나님께서 경고해 주시는 이 말씀을 깨닫고, 오늘도 이 대한민국을 향하여 공갈협박하고 있는 적이며 더 나아가서 교회와 성도를 핍박하는 원수인 북한의 공산독재정권을 반드시 물리침으로써 진정 조국과 민족을 지켜내는 이 나라의 청년들과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 : 경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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