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대통령

박정희 누명을 벗겨준 역사 매저키스트들

동 아 2009. 9. 17. 00:33

 

박정희 누명을 벗겨준  역사 매저키스트들,, [펌]

 

평생을 민주화 투쟁을 했다던 양김, 평생을 인권변호사로, 민주화 투사로

싸웠다던 노무현 합이 15년동안의 정치이슈는  온통 박정희 였습니다.

죽은지 벌써 30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박정희로 거품물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난 15년동안 과거사 관련 입법과 규명 작업에서부터 친일 논쟁에다

의문사조사위원회,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 인터넷에다 텔레비전에다

영화까지 ‘박정희 올인“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국민이 알고 있는 것 이상을 밝혀낸 것이 없습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삼세번이라는데 박정희 욕하는 소리에 신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물론 반(反)박정희주의자들이 집권하고 있기에 벌어진 일이라 생각하지만

정권의 모든 가치를 반 박정희에 걸고 온통 저주의 굿판을 벌렸습니다. 그 요란스럽고 방자했던 굿판을 벌려, 과연 박정희의 치부를 더 이상 밝혀 낸 것도 없고, 오히려 박정희 대통령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늘어만 갔습니다.

 

대국민 역대 대통령 선호도에서 부동의 1위이고 2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1위입니다. 박정희 죽이기가 그토록 극심하게 자행 되었음에도 인기는 높아지고, 관련 책도 출판이 봇물을 이루었습니다. 어느 역사적 인물에 관한 출판물과 견주어도 압도적으로 많다 싶을 정도로 박정희에 대한 출판물을 쏟아졌습니다.

 

박정희는 역사속에만 살아있는 유명을 달리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현실의 권력이 살아 있는 입이 되었고 고인이 된 말 할 수 없는 박정희를 상대로 그토록 난리를 피웠을까요?

 

그 난리를 피움에도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대국민 선호는 요지부동이었고

오히려 힘들 때 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선호도는 치솟기만 했고 박정희 신드롬까지 일어나곤 했습니다.

 

언젠가 대선후보 중에 한명이 박정희 대통령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하자

키도 똑같다고 맞받아 치는 등 저들이 벌린 굿판의 강도가 요란스러울수록 박정희 대통령의 인기는 치솟기만 했습니다. 그것에 샘통이 터졌는지 그러한 국민을 상대로 저들은 ‘광신도’, ‘박통교’, ‘향수병자’, ‘수구꼴통’, ‘친일파’등 막말로 퍼부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생가에 하루 1천명의 참배객이 들끓고, 노숙자들이 서울 문래동 흉상에 소주잔을 올리고, 담배를 올리고, 국립현충원 유족을 제외한 일반인 대부분이 박정희 대통령 참배객이라 할 정도입니다. 이러한 국민을 저들은 “독재에 대한 향수”로 단정지어 버렸습니다.박정희 대통령께서 서거한지 30년이 지났습니다. 한세대가 지나갔음에도 향수병 타령을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장녀가 지금 대국민 선호도 1위에 올라있습니다. 차떼기와 노무현탄핵으로 죽었던 식물정당 한나라당을 살려낸 박근혜의 정치적 능력, 정치인으로서 흔들림 없는 행보, 신중하고 진중한 언행 등 박근혜가 가진 정치인으로서의 역량과 저력이지만 과연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외면을 받는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확실히 박근혜는 신중하고 진중한 정치적 행보, 핵심을 짚어 축약하여 간단명료한 언행, 때가 오면 망설이지 않는 결단력은 아버지를 닮은 것 같습니다. 오색찬란한 구호와 화려한 언변으로 포장된 속빈 강정인 기성 정치인과는 차별됩니다.

 

“독재에 대한 향수병자”인 국민이 아니라, 병자들은 저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권력이라는 채찍으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가해를 통하여

쾌락을 얻는 중증의 ‘역사 매저키스트’였습니다.

 

살아 움직여야 하는 현실 정치인들이 과거사를 핑계로 동학혁명을 뒤지며

쏘다녔습니다. 그 저주의 굿판을 그토록 집요하고 요란스럽게 벌렸지만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과오를 국민이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추가적으로

밝혀 낸 것이 없습니다.

 

어느 논객은 자료가 공개가 되면 될수록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만 높아지더라고 소회를 하고 있습니다. 박통교의 광신도는 저들이었습니다. 저들이 권력이라는 채찍을 휘두르는 매저키스트가 되어 박정희를 통하여 해탈을 하고자 했습니다.

 

저들의 벌린 요사스런 굿판에 그 얼마나 국민이 염증을 느꼈으면 그토록 논란이 많았던 현직대통령 이명박을 그 압도적인 표차이로 당선을 시켜 주었을까요?

 

저들의 그 요사스럽던 굿판에 대하여 국민은 냉혹한 심판을 하였음에도

아직도 저들의 아류는 박통교의 광신도를 거부하며 “역사 매저키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예산의 대부분을 미국원조에 의지하던 폐허의 나라, 세계 최빈국가,

만연된 구습과 패배주의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잘 살 수 있다는 용기를 주고 저기 미래를 보라고 했습니다. 지금 당신의 삶이 아닌 미래의 삶을 보라고 했습니다.

 

당신 지금의 인생이 아닌 당신 자식의 인생을 보라고 했습니다. 치욕스런 일제 강점기, 고통스러웠던 전쟁을 보지 말고 미래를 보라고 했습니다.

 

인천에 성냥공장에서 생산하는 성냥이 최첨단 상품이었던 당시 산업을 상상속에서나 존재할 수 있는 휴대폰을 만들자고 했습니다. 다들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전국민이 귀신에 홀린듯 홀렸습니다. 그리고 정신없이 살았습니다.

 

국민을 홀려 매직을 부리는 그사람이 싫었던 사람들이 배가 많이 아팠습니다. 사사건건 딴지를 걸었지만 매직에 걸린 국민은 옆도 보지 않고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쓰레기 통과 장미”로 비아냥 거렸던 코쟁이들과 이제는 당당하게 맞짱을 뜨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미래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던 지도자, 미래를 보고 달렸던 우리의 국민에 실망한 저들은 과거로 과거로 가자고 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시대까지도 뒤져가며 과거에 거품을 물었습니다.

 

미래를 보고 뛰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과거로 과거로 내 달리며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순국선현들은 죄다 불러내어 선무당이 굿판을 벌리니 순국선현도 돌아 앉아 외환위기, 신용대란이 오고 시장경제가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국민들이 사는 것이 어려워지자 저들은 또다시 박정희가 저질러 놓았다고 생떼를 써습니다.9% 내외의 경제성장을 하면서 물가는 몇십%가 뛰었다는 것입니다. 9%의 경제성장이지만 집권기간내내 몇십% 물가가 뛰었다면 국민의 가처분 소득은 줄고 구매력이 줄었다는 것입니다.

 

실질성장 마이너스라는 것입니다.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데 어떻게 보릿고개가 없어지고, 30%가 넘어가던 집권당시의 실업율, 그 많은 실업자가 어떻게 굶어죽지 않고 살아 남았을까요?

 

60년대 대학을 나온 사람은 군단위에 한 두명 꼽을 정도 였을 것입니다.

그런 고급인력이 왜 막장인생으로 비유되는 광부가 되고자 독일로 가기

위하여 몰려 들었을 정도로 일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노는 사람은 인간취급도 하지 않는 근면한 사회가 되고 그 근면한 국민에게 에게 일자리를 어떻게 제공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생떼를 쓸게 없으니깐 외환위기, 신용대란도 박정희에게 퍼붓습니다. 아무리 조상탓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너무하지 않습니까?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기간은 18년입니다. 재직기간 중 태반은 돈도 되지 않는 사회개혁과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에너지를 소비해야 했습니다. 교육, 산림녹화, 새마을운동, 포항제철, 경부고속도로, 사회간접자본 확충,

자주국방, 농업시설개량 등 이런게 돈이 됩니까?

 

돈을 벌어 쏟아 부어야 하는 사업들입니다. 한도 끝도 없이 돈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그래서 일하면서 건설하자고 했습니다. 희대의 돈키호테 정주영 회장도 조선소 짓기 전에 수주부터 받아 한쪽에서는 조선소를 짓고 한쪽에서는 배를 만들었습니다.

 

싸우면서 건설하고, 일하면서 건설한 박정희 대통령의 그 피 눈물나는 경제개발에 어떻게,저렇게 방자한 입놀림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외환위기, 신용대란은 경영의 잘못입니다. 건설해 놓은 공장이 부실하고, 개발해 놓은 생산기술, 훈련받은 기능공이 부실해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수 천년 동안 봉건제 통치와 경제 밖에 경험해보지 못한 국민을 상대로

십몇년 동안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배우고 가르치며 경제개발을 하여 왔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고 20년이 훨씬 지나서 경영상의 문제로 사고를 치고 왜 박정희 대통령 탓을 합니까?

 

죽을 고생을 하고 도로를 건설하여 써보지도 못하고 물려 주었습니다.

도로를 물려받은 사람이 신호등을 잘못 달아 교통사고가 났는데

왜 도로를 건설하느라 피눈물을 흘린 사람에게 삿대질을 합니까?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친일파로 매도를 하였습니다. 해방 직후 결성된 반민족특위에서도 박정희대통령은 친일파로 규명하지 않았는데 반민특위가 만들어진지 반세기가 지나 박정희 대통령을 친일파로 만들었습니다.정치적 집단으로 전락한 그들의 추악한 행위 그이상은  아닌것입니다 

 

그들의 왜곡하여 조작된 기록 주장은,

 

박정희 대통령이 만주군 제8연대의 소대장으로 임명되어 모란강 부근의

영안으로 전출되었다가 화북지방의 열하 보병 제8군단에 배속된 후 진정한 일본인으로 재탄생하여 110여회나 독립군 토벌작전 전투에 참여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1944년도입니다. 독립은 1945년에 되었습니다.

 

사실,,1944년 당시 독립군은 만주에 없었고 광복군은 만주에서 2,000Km나 떨진 중국내륙 충칭이라는 곳에 있었는데 110번이나 독립군 토벌을 하였다고 새빨간 거짓말을 합니다. 일년에 110번 독립군 토벌작전 전투에 참전했다면 박정희 대통령은 터미네이터입니다. 삼일에 한번 꼴로 총알이 빗발치는 전투를 치루었다는 것인데, 이정도도 터미네이터면 과로사 할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불사조인가 봅니다.

 

일년에 110번 전투에 참전하여 빗발치는 총알을 피해 살아 남았습니다.

전투에 참전한 군인의 사망확률 1%라 해도 박정희 대통령은 총에 맞아 죽었거나 또는 총알에 불구가 되어야 옳았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터미네이터이고, 총알도 날라오다 박정희 대통령 바로 앞에서 직각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도술을 부리는 도인이었을 것입니다.이북에  김일성이라는 작자가 이러한 황당한 전설을 잘지어 내어 이북을 통치하고있습니다만,, 

 

18년을 집권하고 서거한지 3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박정희 대통령에게 쫑알 거립니다. 아직도 박정희 대통령 탓을 합니다. 저잣거리 시정잡배가 술마시고 “아버지 왜 날 낳으셨나요” 술주정하듯 박정희 대통령에게 앙탈을 부립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미래를 위한 정치, 우리 후손을 위한 정치는 저들의 과거회귀적 정치와는 상반됩니다. 그래서 미래로 가려 하는 국민을 죽어라 과거로 회귀시키려 합니다. 양반, 쌍놈의 반상의 구별이 있던 봉건시대로 가자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미래를 위한 정치가 실종되었습니다.

현직 대통령도 미래를 위한 그림을 그리지 못합니다.

오로지 현실정치에 함몰되었고, 국민에게 꿈을 주지 못합니다.

 

정치는 과거를 잊어서도, 미래를 너무 앞서가도, 현실을 떠나도 되지 않는

살아있는 생물입니다. 너무 과거로만 가려 했고, 너무 현실에만 주저 앉았던 그 지긋 지긋한 민주와 진보 정치의 구태를 벗어 던져야 할때가 되었습니다.                                   박근혜 -*For a that day    

   박정희 바로알리기 국민모임